해강 김규진 海岡 金圭鎭 1868(고종 5) - 1933
서화가. 본관 남평(南平), 자 용삼(容三), 호 해강(海岡). 백운거사(白雲居士), 취옹(醉翁), 만이천봉주인(萬二千峰主人), 동해어부(東海漁夫), 지공학인(至空學人 ), 지창노초(至窓老樵), 수정도인(守靜道人), 석전경수(石田耕叟), 무기옹(無己翁), 청허재주인(淸虛齋主人), 삼각산인(三角山人), 포옹(圃翁), 동교(東橋) 등.
시종원 부경 김기범(金起範)의 아들로 평남 중화에서 출생했다.
어려서 외삼촌인 이소남(李小南)에게 글씨를 배우고 장인인 이희수(李喜秀)에게 서예를 배웠다.
조선미술전람회 심사위원으로 활동했다.
1885년부터 8년간 청나라에, 1902년부터 1903년까지 일본에 머물며 그 곳의 서화를 접할 기회를 가졌다. 이후 1915년에 서화연구회를 창설하여 문인화, 서화, 사군자 등을 가르쳐 후진 양성에 나섰고, 이때 서화교습용 교과서로서 『해강난죽보(海岡蘭竹譜)』를 발간하여 당대 묵죽과 묵란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전서, 예서, 해서, 행서, 초서를 모두 잘 썼고, 금강산 바위의 ‘미륵불(彌勒佛)’, ‘천하기절(天下奇節) 등의 대자(大字)가 유명하다.
영친왕 이은에게 서법을 가르치기도 하였다.
그림에서는 산수화, 화조화, 사군자를 즐겼으며, 특히 묵죽도가 절묘하였다.
사진술을 도입하여 천연당 사진관을 개업했고, 어전(御前)사진사가 되었다.